행복우물

 

 

 

행복은 우물과 같다. 우물에서 물을 긷지 않는다고 더 모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아주 오래 긷지 않고 방치해두면 물이 썩기도 한다.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길어내야 한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강의 중에 가끔 행복한 일을 이야기하라면 어려운 일도 아닌데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우물을 잘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우물물을 길어보지 않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물을 긷기를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

 

행복우물을 잘 긷는 방법은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행복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사무실에 다 죽어가는 행복나무(해피트리)가 있다.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선지 날마다 5~10장의 잎이 떨어졌다. 아파보이니 날마다 물을 주었다. 굳세게 잎을 떨구니 이제는 앙상해졌다. 뽑아내고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하나 생각하다 줄기 끝과 겨드랑이를 보니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잎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새 잎을 피워내느라 오래된 잎들이 그렇게 떨어졌나보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내는 힘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행복감은 물론 자신감까지 같이 피어났다.

 

손녀가 태어날 때 지인이 노란색으로 목도리와 모자를 떠 주었다.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성의 색상을 선택해서 모자와 목도리를 떠 준 사람이 너무 고맙다. 모자랑 목도리다보니 다섯 살이 되었는데도 쓸 수가 있다. 얼마 전에도 목도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뽐내며 걸어가는 손녀가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만일 필자가 뜨개질에 엄청난 재주가 있었다면 그 선물이 그렇게 고마웠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늘 겸손해진다. 그리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게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도 훨씬 커진다. 그러니 잘하는 것만 행복이 아니라 잘 못하는 것은 더 큰 행복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브릿지가 되어주니 말이다.

 

법정 스님의 기침 덕분이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시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기침이 나오면

자다가도 깨어서 앉아야 합니다.

낮에 참선하고 경전을 읽을 때보다

오히려 정신이 아주 맑고 투명해집니다.

기침 덕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중략

 

기침이 아니면

누가 나를 새벽에 이렇게 깨워 줄까 생각하니

괜찮은 친구요,

인연이에요.

 

귀찮은 기침에도 이렇게 감사하는 포인트를 잡아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행복우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우리 몸을 포함하여 자연에는 많은 힌트가 숨어 있다. 이 우물 같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신만의 우물을 찾아내어 매일 길어 올리는 것, 그것이 자신의 특별한 경쟁력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행복한 인생으로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우물을 길어 올리는 일에 부지런하자. 그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맑고 향기로운 생명수같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