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욕구

 

 

 

아기는 울음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다. 아기들은 요구와 욕구가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기들의 경우 요구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지만 아기를 가까이서 관찰해온 엄마나 보모는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를 단번에 알아내서 욕구의 원인을 해결해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욕구를 다 표현하지 못한다. 욕구의 일부분만을 요구의 형태로 표현하게 된다. 예전에 식당에 갔는데 반찬이 시원치 않아서 계란말이를 좀 더 달라고 요구했다. 욕구는 더 맛있는 반찬을 먹고 싶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것이겠지만 요구는 단순하게 계란말이를 더 달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사장은 계란말이를 1인당 1쪽 이외에 더 많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만일 주인이 손님의 욕구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계란말이가 넉넉하지 않아서 다른 반찬을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도 그렇게 큰 불만없이 식당을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 갔던 일행들이 하나같이 그 식당은 다시 가고싶지 않다고 했고, 그 식당은 얼마 지나지않아 문을 닫아 버렸다.

 

요구는 욕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큰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주 최소한의 요구만을 하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변에 대부분이 금연자여서 어느 날 금연의 동기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특이한 케이스가 있었다.

 

자신은 고등학생 때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아서 혹시 부모님께서 아시게 된다면 크게 혼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돈을 쥐어주시면서 기왕이면 좋은 담배를 사서 피우라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몸이 약한 아들이 몸에 안 좋은 담배를 피우는데 싼 담배는 몸에 더욱 더 안 좋을테니 꼭 피우려거든 좋은 담배를 피우라는 것이다. 그는 그 날 이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의 절제된 요구 뒤에 있는 진짜 욕구를 읽은 것이다. 필자도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가끔 욕구를 그대로 거르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를 내거나 심지어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아마도 욕구를 절제해서 최소한의 요구나 아니면 아름답게 포장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요구 뒤의 욕구를 읽을 수 있는 힘이 짐승과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요구만을 해결해주고 그치는 인간관계가 많다. 물론 모든 관계를 욕구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욕구를 읽어보려는 노력이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해주고 심지어 감동까지 이끌어낼 수 있게 한다.

 

가끔 욕구를 잘 못 읽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고, 너무 오버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더라도 노력조차 안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훨씬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한다. 특히 비즈니스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상대의 요구가 아닌 그 요구를 만들어낸 욕구를 파악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白戰不殆라는 말도 같은 내용일 것 같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는 뜻이 무엇일까? 욕구를 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상이 전쟁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을 좀 더 새겨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요구와 욕구를 구분해서 파악할 수 있다면 일상에서도 비즈니스에서도 더욱 더 진한 행복을 맛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